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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의 역사와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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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버스투어  1 Comments  2,104 Views  20-03-1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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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의 역사와 유래




역사를 보면 전주(全州)라는 지명이 처음 사용된 때는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으로, 완산주를 전주로 개명하면서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1253년의 역사를 간직한 천년(千年)도시가 바로 전주이다.


900년 견훤이 세운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전주는 조선왕조 500년을 꽃피운 조선왕조 발상지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전 지역과 제주도까지 관할했던 전라도의 실질적인 수도로, 행정중심지로 큰 역할을 담당한 도시이다.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나라의 수도였던 곳이 6개소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주는 도읍지의 요건을 갖춘 완벽한 도시 면모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주변의 드넓은 평야와 바다가 연결되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갖춘 전주는 일찌감치 풍요의 고장으로 인정받았으며, 이러한 풍요와 여유로움은 전통문화를 꽃피우고, 섬세한 멋과 맛의 고장으로 천년 세월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태조 이성계의 선조들이 살았던 전주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이다. 그래서 전주를 조선왕조의 발상지,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고 한다. 전주이씨의 시조는 통일신라 문성왕(재위 839~857년) 때에 사공(司空) 벼슬을 지낸 이한(李翰)이며, 시조비 경주김씨는 신라 태종 무열왕의 10세손으로 군윤(軍尹, 향직)을 역임한 김은의(金殷義)의 딸이다.


태조의 선대들은 그 본향인 전주에서 세거(世居 한 고장에 대대로 사는 일)하였다. 그러다가 태조의 고조부인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 때 전주를 떠나 삼척과 의주를 거쳐 몽고 알동으로 옮겼으며, 익조 때 토착세력의 위협을 피해 의주로 돌아와 살다가 함흥에 정착하여 도조ㆍ환조ㆍ태조에 이르기까지 함흥ㆍ영흥 일원에서 세거하였다. 목조가 전주를 떠난 것은 지방관의 갈등 때문이라고 한다.


목조는 지전주사(知全州事)가 자신이 가까이 했던 관기에게 산성별감의 숙청을 들게 하자 관기를 몰래 빼돌렸으며, 이에 지전주사와 산성별감이 자신을 처벌하려 하자 전주를 떠나 외향인 삼척으로 이주하였다.


그런데 삼척에 새로 부임한 안렴사가 공교롭게도 전주에서 마찰을 빚었던 그 산성별감이었으며, 이에 목조는 삼척을 떠나 동북면으로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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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 전주, 전주에도 4대문이 있었다
1907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4대문 중 3대문이 동시에 철거되면서 현재 유일하게 풍남문만 일부가 남았지만, 분명 전주에도 4대문이 있었다.


동문은 완동문(完東門), 남문은 풍남문(南門), 서문은 패서문(沛西門), 북문은 공북문(供北門)이다. 현재 동문은 책방거리와 동부시장의 중간쯤(동문사거리)이며, 이곳에서 경기전을 안쪽으로 끼고 성곽을 축조, 현존하는 풍남문에서 남문을 이루었다.


다시 남문시장 도로를 따라 성곽이 이어져 현 다가동 파출소 앞에서 서문을 일으키고, 시네마 극장 앞 도로를 따라 성곽이 세워졌고 현 오거리(북문승강장)옆에서 북문을 일으킨 뒤 동문에 연결되는 형태가 전주성이다. (최창조·「한국의 풍수사상」)


전주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1911년)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근대식 한옥들을 짓기 시작하면서 발전했다.


당시 일제는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해 가야 했다. 전주에서 군산항까지 중심도로를 내기 위해 전주성곽의 서쪽을 헐었다. 이때 개설된 도로 가 봄이 되면 벚꽃길로 유명한 ‘전군가도’이다.


전주에 처음 들어온 일본인은 1897년 이노우에 쇼타로(井上正太郞)와 모리나가 신소(守永新三)라는 야마구치 현 출신의 두 형제가 들어왔던 것이 최초이다.


일본 옷을 입고 전주에 나타난 이들을 보고 개들이 울부짖었고 동네 사람과 꼬마들이 줄줄이 따라 다녔다고 한다. 이렇게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인들은 주로 잡화상이나 매약상으로 활동하며 말라리아약, 회충약, 사탕, 과자, 거울, 석유, 램프 등을 취급했다.


당시 외국인은 성내에 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좌판을 벌려서도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서문시장과 남문시장에서 행상을 하였다.


을사늑약(1905년)이후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 된 일본인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


양곡수송을 위해 전군도로(全群道路)가 개설(1907년)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되었고, 1911년 말 성곽 동반부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을 점거하게 되었다.


쌀의 수탈이 진행되는 동안 전라도 농민들의 신분과 처지는 급속히 나락으로 떨어져 갔지만 상대적으로 호남에 거주 하는 일본인들은 승승장구했다.


특히 일본인 상인들은 이 과정에 얻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허물어진 성곽 안으로 들어와 일본식으로 집을 짓고 상권을 형성하여 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 안과 성 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이후 1930년대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시가지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확장되면서 서문 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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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던 선비들, 한옥마을에 터를 잡다
1930년대 중반 뜻있는 선비들과 주민들이 조상의 얼이 스민 오목대와 이목대, 한벽당이 굽어보고 있는 풍남문 동쪽에 집단으로 한옥을 건립하고 마을을 건설했다. 이곳은 조선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신 경기전이 버티고 있는 지역이며, 전주향교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고고한 선비정신이 깃든 한옥마을은 해방 이후인 1960~70년대 전주의 명문학교들이 모여 있는 교육의 거점 역할을 했으며 전주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중앙초등학교, 성심여자중고, 전주여고, 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 전주공업전문학교 등 학교기관들이 대거 위치했다.


지방의 지주들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 풍남동 일대에 집을 사고, 지방에서 전주 유학을 온 학생들은 한옥마을에서 자취나 하숙을 하며 수학했다.


당시 남자들은 북중학교를 거쳐 전주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엘리트 코스였고, 여자들은 전주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노력했다.



1900년 초 부호들의 신식동네
전주인들의 신흥주택가로 부상한 한옥마을은 30년대만 해도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부자들의 신식동네였다. 70년대까지 일 년에 1만석을 거둬들이는 부호들이 살았다고 한다. 건축양식도 새롭게 변했다. 한옥에 쓰이지 않던 유리문을 해달기도 했다. 주방과 화장실도 쓰기 편하게 지어졌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주거형태였던 셈이다. 해방이 되면서 한옥마을은 전주의 대표적인 부촌이요, 인구밀집 지역이 됐다. 전주한옥 마을이 현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주민들의 고통과 희생의 값진 결과이기도 하다.


근대 도시형 한옥들로 형성된 전주 한옥마을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부촌이었다. 문화연필, 백양메리야쓰 같은 유명 기업이 한옥마을에 자리했다.


문화연필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생긴 연필 공장으로 1949년 전주시 완산구 교동 79번지에서 창업하여 1978년 팔복동으로 이전하기까지 한옥마을에 자리했으며, 1950년대 이후 내의류업체 BYC의 옛 상표인 백양메리야쓰를 제조하던 생산시설이 1980년대까지 이곳 한옥마을에 위치했다.


그러나 제조업이 도심 외곽으로 이전하고, 점차 주거 환경이 변화하면서 한옥마을은 퇴락하기 시작하였다.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면서 한옥은 보존될 수 있었지만 마을은 급격히 공동화(空洞化)되기 시작했다.

집이 무너져도 마음대로 손을 댈 수 없는 극심한 규제 속에 주민 반발이 높아졌다.


1987년 전주시는 한옥보존지구를 ‘제4종 미관지구’로 변경하고 건축규제를 완화했다. 10년 후인 1997년, 미관지구가 폐지되면서 법적 규제가 사라짐에 따라, 양옥이 다수 들어섰다.


그러나 건설경기불황과 IMF 여파로 신규 가옥이 많이 지어지지는 않아, 크게 훼손되지 않고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96년 대한민국이 한일월드컵을 유치하고 이듬해 전주가 개최도시로 선정되면서 한옥마을은 다시 한 번 꿈틀거린다. 한옥마을 보존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99년 전통문화특구 기본 및 사업계획이 작성되었다.


세계인이 전주를 찾아올 때를 대비해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보여줌으로써 전통문화도시 전주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자는 의도였다.


보기 좋은 한옥들과 다양한 체험시설이 늘어나고 은행로에 실개천이 놓이는 등 크고 작은 변화를 거치면서 전주 한옥마을은 오늘에 이르렀다.


2010년 전주는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세계 최초 도시형 국제슬로시티로 선정되었고, 2016년 재지정되었다.


또한 2012년 유네스코 음식 창의 도시로 선정되었고, 2016년 론리플래닛이 선정한 ‘1년 안에 가봐야 할 아시아 10대 명소’에 3위로 선정되었다.


이에 발맞추어 전주한옥마을은 2014년 이후 해마다 국내 관광지 최상위에 올랐다.


전주한옥마을은 국제적인 문화관광의 명소가 되어 한 해 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국제적인 문화관광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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