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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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버스투어 0 Comments 776 Views 20-10-07 15:51본문
폐광의 기적을 만들다ㆍ창조의 메카! 광명동굴
1912년 일제가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광명동굴(구. 시흥광산)은 일제강점기 징용과 수탈의 현장이자 해방 후 근대화ㆍ산업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산업유산이다.
광명동굴의 최초의 기록은 1903년 5월 2일 가학리에 「시흥광산」이 설립되었다는 기록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광업권침탈차원에서 당시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 고종황제를 압박하며 '광상조사기관'을 설치하고 금ㆍ은 광산을 발견해서 이를 독점하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광명동굴 역시 1912년 고바야시토우에몬 일본인의 이름으로 광산 설립이 되었고 '광상조사기관'을 앞세운 일제의 광업권 침탈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광산에는 대부분 농민 출신으로 징용과 생계를 위해 온 광부들이 많았으며 전성기 때에는 500여 명의 광부가 근무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부터 채굴된 광물들은 일본으로 보내져 태평양 전쟁의 무기가 되었고 해방 전까지 엄청난 양의 광물이 수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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