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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축제 '강릉단오제' 2019. 6. 3(월) ~ 6.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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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이버스투어 댓글 0건 조회 7,075회 작성일 19-06-0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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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축제 '강릉단오제'


   

 

*행사 개요

개요 : 천년을 이어온 전통 민속 축제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행사명 : 2019 강릉단오제 2019 Gangneung Danoje Festival

 

슬로건 : 지나 온 천년, 이어 갈 천년

 

기간 : 2019. 6. 3() ~ 6. 10()

 

장소 : 강릉남대천 및 지정행사장

 

주최 : 사단법인 강릉단오제위원회

 

주관 : 사단법인 강릉단오제보존회 외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강원도, 강릉시


*성격 

음력 5월 5일 단오는 연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로 인식되면서 수릿날,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午節), 단양절(端陽節) 등으로 불렸다.


수리는 신성(神聖)한 날, 최고의 날 등 신성과 관련 있는 의미심장한 날이다.


민간에서는 농작물의 생장이 왕성해 지는 시기를 앞두고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로서 24절기 중에 손꼽히는 중요한 날이다.



*강릉단오제의 특성

우리나라 단오의 특성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풍년을 기원하는 파종제로서의 단오이다.

'하늘에 제사하고 밤새워 즐긴다.'는 고대 제천의례가 기원이다. 이때 단오는 축제로서 공동체 신앙을 바탕으로 성장한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계절제이며 강릉단오제가 대표적이다.


둘째, 세시풍속이다.

물맞이, 창포 머리 감기와 씨름, 그네뛰기로 상징되는 단오세시는 민간, 궁중, 중국의 단오 풍습이 한데 어울려 존재하고 있다.


셋째는 조상숭배이다.

이익은 성묘의 기원을 단옷날 열린 수로왕 제사에서 찾았다. 즉 후손들이 수로왕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단옷날 산에 올랐기 때문이다. 고려말, 조선초의 원천석도 단오 성묘를 중시하는 시구를 남겼다. 조상에 대한 숭배의 내면에는 우리 민족이 하늘에 제사하던 풍습이 산신으로 이어졌다가 조상신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강릉단오제에서 세가지 특성을 고르게 볼 수 있다. 다만 현대화 되면서 조상숭배와 관련된 행사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제천의례 기능의 단오제는 계속되고 있으며 세시풍속은 지역민들의 생활에 녹아 있을 뿐 아니라 도시인들은 단오장의 체험관을 통하여 접하고, 전승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


민속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거의 찾기 힘들다. 때문에 옛 문헌의 작은 단서에 접근하여 유추 해석하기도 한다. 삼국지 동이전에 기록된 우리 민족의 제천의례가 강릉단오제의 기원이다.


삼국시대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5월 단옷날 시조신(始祖神)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사가 남아있다. 신라는 시조 혁거세와 5묘(廟)를 정하여 한 해에 여섯 번씩 제사하였고, 가야에서는 시조인 수로왕에게 매년 다섯 번씩 제사를 지냈다.


그 중 한번씩이 단옷날이었다.


신라와 가야의 관습에 미루어 백제와 고구려의 풍속도 비슷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후삼국 태봉의 왕이었던

궁예가 단옷날 태어났다는 기록으로 보아 단오 풍속은 어떠한 형태로든 통일신라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고려가요 「동동(動動)」에 단오를 수릿날로 기록하고 있다. 「동동」은 단옷날을 맞아 천년을 장수할 약을 바치겠다는 의미이다. 수릿날을 상서로운 기운을 가진 절기로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고려시대에는 왕이 조상에게 제사하고 단오시(端午詩)를 지어 신하들에게 보이고 불꽃놀이와 서민들의 돌싸움을 지켜볼 만큼 각별한 날이었다.

이 같은 전통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성행하였다. 조선이 건국하면서 한때 단오놀이를 금지시 켰으나 세종은 석전을 부활시켜 병중인 상왕 태종과 함께 서민들의 돌싸움을 구경하였다.

단옷날은 사형집행을 금지시켰고 경국대전 형전에 금형일로 등재되어 있다.

왕에 따라 달랐지만 고려와 조선시대에 단오를 삼명일로 정해 공휴일이었던 경우도 많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급격한 근대화는 전통문화를 낡은 것, 버릴 것으로 치부했다.

수많은 전통들이 사라져가고 단오 역시 많은 지역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노인들은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 중에도 단오제를 시행했노라고 힘주어 고증한다. 무녀들도 시기적으로 어려울 때는 압박의 눈을 피해 중앙시장이나 남대천 변, 성남동 한구석에서 소규모로 나마 빼놓지 않고 단오제를 치렀다고 증언했다.

강릉단오제는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고 있거나 고증을 통하여 원형 복원이 가능할 만큼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덕분에 강릉단오제는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13호로 등록되면서 우리 민족 전통 민속 축제의 원형성을 간직한 단오축제로서 고유의 가치를 획득하였고, 2005년 11월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록되는 영광을 차지하였다.


이제 전 세계의 인류가 보존해야할 축제로 부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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